2020 SS Development - Behind 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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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뱅 이후 아직도 팽창 중인 우주와 그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인에 대한 가정은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를 자극하는 요소이다. 오락성 대중문화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주, 천체물리학, 외계인 등등의 단어들을 대중문화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인 POP 음악 industry에서 발견했을 때, 평상시에 받는 자극보다 더 큰 자극을 받았다면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집합이라고는 단 1도 있지 않을 것 같은 두 영역, 상업적 영역과 학술적 영역이 E.T라는 곡에서 어떻게 화학적 결합을 하게 되었는지 곡의 서사가 궁금했고, 그 관점이 궁금했다.

 곡에서 나타나는 외계인은 역설적으로 너무 평범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그러나 평범한 외형의 대상을 외계인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창의적인 관점이 있었고 나는 그 관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E.T.라는 곡에서의 외계인은 ‘인간’이다. 지구 대기권 밖의 기이한 형태를 한 존재가 아니라 곡의 화자가 사랑하는, 화자와 똑같이 생긴 한 ‘인간’이다. 일반적인 관념과 다르게 자신이 사랑하는 어느 한 지구인을 왜 외계인으로 지칭했을까. 이는 화자의 주관적 경험으로 완성된 주관적 접근법에 기인한다. 화자는 현재,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수준의 자기통제불능상태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를 '지구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으로 주관화시켜 받아들인다. 또한 그런 주관적 해석의 연장선 상에서 이 비(非)지구적 상황을 초래하는 대상 역시 탈(脫)지구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관점으로, 외계인을 로맨틱한 묘사의 방편으로 사용한다. 전적으로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문학적 상상력과 설득력에 수긍이 간 나는 이 곡이 비쥬얼적으로는 어떻게 다뤄졌는지 궁금해졌다.

 뮤직비디오는 야생에서의 다양한 모습들을 짤막한 필름 형식으로 반복하여 보여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사슴, 꽃이 봉우리를 피우며 만개하는 모습, 전력으로 쫓는 치타와 그 치타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는 영양. 이들은 모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다양한 ‘삶' 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 속에는 '죽음'도 있었다. 


태어난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은 아기 사슴이 치타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은 눈시울을 붉히게 할 수 있다. 사자에게 물린 채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천천히 숨이 멎기만을 기다리는 가젤의 모습은 눈물을 자아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생’과 ‘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삶의 시작인 '탄생'은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끝으로 나아간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한 생명이 모태에서 분리되어 나와 독립된 ‘삶’ 을 시작하는 그 순간이, 그 생명에게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DNA가 발동된 순간이기도 하다. 어쨌든 태어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멸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생명체는 ‘죽음으로의 여행’이라는 미션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실히 수행 중이다. 이 성실한 이행에서 생명의 살아있음, 생명의 생명다움, 생명의 힘을 보았고, 그리고 그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보았다. 비록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생명이라도 말이다. 


이렇듯 나는 삶과 죽음을 대립적 관계가 아닌 먼저 발생한 사건(생)이 나중에 발생하게 될 사건(사)으로 귀결되는 순차적 관계로 보았다. 즉, 삶을 절대선으로 보고 죽음을 절대악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연대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태어난 모든 것은 그냥 그렇게 흘러갈 뿐이고 그렇게 열심히 흘러가다 보면 결국 죽음에 다다를 뿐이다. '삶' 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삶'의 모든 과정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생명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했다. 사자의 가젤에 대한 행위가 우리에게 안쓰러움이나 슬픔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사자에 대해 선악적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사자는 자신의 생명활동을 수행 중일 뿐이고, 가젤 역시 생명활동의 종착점을 향하여 열심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체의 가치평가를 하지 않은, 생명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Pure Image Of The Life’를  ss20에 담아냈다.

  


 ‘편집되지 않은 생명의 순수한 모습’ 이라는 주제를 garment로 구체화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일체의 가치평가가 배제된, 어떠한 선학습된 미의식도 없는 상태를 의복이라는 미디어 위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적합할지 고민해 보았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겨졌으면 구겨진 대로, 실수가 발생했으면 발생한 대로’ 


' Untouched', 'Unmodified' 그리고 'Leave it as it is'. 


 이번 ss20 컬렉션에서 사용된 디자인 키워드들이다. 그리고 이 키워드들에 대한 첫번째 디자인적 소통 방식이 원단, 또는 옷 자체를 구긴 상태로 고착화 시키는 것이다. 




 가치판단이 일절 배제된 생명의 활동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다. 오직 DNA에 쓰여진 대로 반응할 뿐이고, 그에 대한 또 다른 action, reaction이 있을 뿐이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 이 법칙들이 생태계를 지배한다.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구겨진 것을 펴는 행위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찢어진 것을 이어 붙이는 행위 같은 것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그에 대한 기록과 흔적만 남는다. 독립변수와 그에 대한 종속변수와의 관계로 요약할 수 있는  생명의 모습을 디자인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구김의 고착화' 외에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모든 행위에는 그 결과가 따라온다. 이는 원단에서도 똑같이 발현된다. 의복의 구성상 잘려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잘려 나가게 된다면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cutting이라는 행위가 수반하는 결과를 garment 디자인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cutting과 그에 대한 결과를, 일체의 가치 평가없이 있는 그대로 의복에 담고자 하였다.  


잘려진 결과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구겨진 원단의 고착화에 이어 ss20 컬렉션에서 주되게 사용된 또 다른 키 아이디어이다.




 컬렉션의 완성은 옷의 shape이나 detail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특히 t-shirts에서의 감각적인 프린트는 아이템의 가치를 결정짖는 절대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번 ss20 컬렉션에서는 프린트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위하여 나는 두가지 루트로 나눠서 접근했다. 첫번째 루트를 통해서는 'Leave it as it is' 라는 아이디어를 2D적 디자인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고, 두번재 루트를 통해서는 'Leave it as it is' 자체를 상징하는 그 무언가를 찾고자 하였다. 


  첫번째 접근 방향에서는 3D garment 디자인에 사용되었던 아이디어가 2D 프린트 디자인에도 통용될 수 있도록 스마트하게 변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구겨진대로 고착화된 원단’이라는 아이디어를 2D 원단 위에 적용시키기 위하여, 같은 2D 미디어인 크로키북의 여러 페이지를 다양한 형태로 구겨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겨진 페이지 위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고착화’라는 개념을 이 실험에서도 똑같이 실현시켰다.

 이 일련의 테스트를 통하여 ‘구김의 고착화’ 아이디어가 프린트 디자인으로 디벨롭되는 데에 있어서 셔츠에 쓰였던 방법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멋대로 구겨진 원단 위에 어떠한 작업을 수행하였다면, 그 구겨진 상태를 원래대로 펴 보면 어떨까. 원래대로 다시 펴 보게 되면 구겨진 상태에서 수행되었던 작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leave it as it is’ 라는 기본 아이디어는 여전히 공유하되 원래의 관점 내지는 개념을 약간 비트는 방식으로 랜덤하게 찍힌, 또는 쪼개진 스탬프 형태의 프린트 디자인을 완성해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린트 디자인 디벨롭을 위한 두번째 접근 방향에서의 아이디어 발견을 위하여 'leave it as it is'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공하지 않고 보여준다’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보는 즉시로 안다’가 될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뜯어보고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즉시로 직관적으로 그 대상을 전부 다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매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x-ray였다. 


x-ray 는 사물의 외관과 내부를 하나의 2D 이미지 안에 한꺼번에 보여주는 미디어이다. 이 미디어를 통하여 우리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사물의 모든 것을 한번에 파악할 수 있다. 보는 그 즉시로 그 물건의 형태 뿐 아니라 내부까지 다 알 수 있게 해주는 x-ray는 직관이라는 개념을 클리어하게 보여주는 미디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는 데에는 많은 현실적인 장벽이 있었다. 첫번째, 병원에서의 x-ray 촬영은 철저히 의학적 용도 범위 내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억 단위가 넘어가는 x-ray 장비를 개인적으로 구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실크스크린 방법을 사용하는 나염 프린팅, 히트 프레스로 원단 위에 찍어 누르는 열 전사 방식, ‘Direct To Garment’ 라는 디지털 프린트 방식. 이 모두를 여러 업체들과 실험을 해 보았으나 만족할 만한 수준의 프린트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프로젝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디어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 아이디어를 구현내는 방법은 어떻게든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 많은 업체와의 상담과 다양한 방법의 테스트를 통하여 퀄리티와 내구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을 알아냈고, 결국 만족할 만한 프린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시즌이 그렇지만 ss20 컬렉션은 수많은 시도와 도전으로 이루어진 시즌이었다. 간략하게는 이전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프린트 아이디어를 디벨롭시킨 것부터, 수 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어냈던 것, 컬렉션의 주제를 한 눈에 보여주는 artwork garment 제작까지 수 많은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진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이는 에쏘피가 그 작업 세계를 넓혀나갈 수 있는 더 큰 캔버스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 많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큰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를 극복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시련이 와도 에쏘피가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듭된 도전 끝에 원하는 결과를 성취했던 것처럼 그 역시 극복할 것이다. 그 아픔의 시간들은 인류 역사의 괄목할 만한 진보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병마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의료진들과 환자들의 승리를 에쏘피는 간절히 기도한다.

-For All 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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